October 13, 1919 | The Evening News

에디스 데일리 기자

로스 여사는 “일본을 통해 아시아에 처음 왔을 때 저는 일본인들에게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공손했고 유쾌했습니다. 한국 도시로 가는 기차에서 한국 사람들은 가난하고 가련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생각은 나중에 바뀌었습니다. 일본인들은 가식적인 데 반해 한국인들은 믿음성 있고 매우 학구적이었습니다. 한국은 산업국도 아니고 전사국도 아니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풍부한 천연자원이 있는 나라고, 한국인들은 문화인이자 농업과 학문에 뛰어난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집을 따뜻하게 하려면 풀과 소나무 가지를 태워야 한다. 일본인은 한국의 석탄을 일본에 보낸다. 일본 정권하에서 한국에는 정말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이 세워졌다. 특히 서울 인구는 약 50만 명에 이른다. 서울에는 현대말로 하면 ‘한국(Korea)’이라는 의미의 ‘조선은행’이 있다. 조선은행의 자본금이 4천백만 엔 정도로, 미화로 2천만 달러 정도다.

 

부서지는 집들

거리는 일본인에 의해 넓혀지고 아름답게 됐다. 하지만, 이는 모두 한국인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이런 아름다움을 위해 그들의 집은 몰수당하고 철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으며, 피난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떠돌아다녀야 한다.

만약 이들이 불만을 표시하면, 일본의 잔인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매질이 기다린다. 잡혀간 사람은 첫날 30대를, 둘째 날에도 30대를, 아직도 살아있다면, 셋째 날에도 30대를 맞는다. 매질은 연속으로 행해진다. 많은 이들이 가혹한 형벌을 받는 중에 사망한다.

“무슨 희망이 있어서 한국은 독립하려고 합니까?”

로스 부인은 “다른 작은 나라들처럼 한국의 희망은 국제연맹에서 다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며, “한국이 지금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국제연맹에서 채택된 후라야 한국의 고충을 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불타는 증오

로스 부인에 따르면 고대에서 현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한국인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고, 일본에 대한 한국의 증오심은 불꽃과 불의 문제지만,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폭력 저항이 세계의 동정심을 얻을 수 있을 때를 대비해 억제되고 있다고 한다.

로스 여사는 한국의 관습과 의복의 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진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많은 우편엽서에는 “이전에”라는 캡션이 달려있었다. 이는 한국이 일본에 의해 합병되기 전이라는 의미다.

쟁기질은 황소 한 마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마리의 황소가 하는 것이다. 이는(소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식보다 황소를 끔찍이 돌본다. 로스 부인은 “일과 후에 무거운 쟁기는 사람이 등에 지고, 소가 앞장서서 가는 장면은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소에게 줄 먹이를 만들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고 말했다.

“내 딸은 ‘무거운 짐 진 자들’이란 표현이 한국인을 위해 쓰인 것 같다고 종종 말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엄청난 짐을 짊어지고 다닙니다. 짐승처럼 무거운 짐수레에 짐을 싣고 다닙니다. 한번은 한쪽 팔로는 작은 재봉틀을 들고, 다른 팔로는 무거운 아기를 안고, 머리에는 엄청난 양의 빨랫감을 이고 가는 여성을 본 적도 있지요.”

 

흰옷 입는 남성들

빨래는 마을에 흐르는 작은 개울에서 이루어진다. 옷은 잿물로 희게 하고, 막대기로 두드려서 빤다. 다리미질도 막대기로 한다. 남자들은 여름과 겨울에 대부분 흰색 옷을 입는다. 여름에 입는 ‘정장’은 아마 가장 얇은 리넨 소재일 것이다. 겨울에는 옷에 솜이 패딩처리 돼 있다. 남성들이 입는 헐렁한 기모노 같은 외투는 한쪽으로 묶는데, 고리 하나와 긴 줄이 두 개 있어 조심해서 묶어야 한다. 바지는 형태가 없는 기묘한 옷으로, 접어서 허리에 맞도록 입는다. 가방 같은 ‘바지’는 발목에 리본으로 촘촘히 묶는다. 다채로운 색깔의 이 리본들은 걸핏하면 엉키기 쉽다. 로스 여사는 신발 끈을 묶으면서 높은 계층의 한국 신사들이 “최선을 다해” 옷을 입으면 매우 멋지다고 말했다.

 

많은 것을 알려주는 모자

한국에서 모자는 모든 것을 나타낸다. 한국에서 쓰는 일반적인 모자는 ‘춤이 높고 일직선으로 뻗은 선원’을 닮았다. 한국인들은 이 모자를 머리 위에 가볍게 쓰고, 양 갈래의 끈을 턱밑에서 묶는다. 끈에는 구슬 체인이 달려있는데 긴 구슬과 호박으로 만든 둥근 구슬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구슬들은 가보로 내려온 것들이다. 일상적으로 쓰는 모자는 검은색 모자이며 소년들은 결혼할 때까지 모자를 쓰지 않는다. 소년 시절에는 머리를 뒤로 땋아 길게 늘어뜨린다. 결혼한 후 머리카락은 상투를 틀어 머리 위로 올려 모자 안에 넣는다. 이는 결혼을 했다는 표시다.

 

흰색은 애도의 색

흰색은 한국에서 애도의 색이다. 한국인들은 애도를 표시하기 위해 흰 모자를 쓴다. 흰 모자를 살 수 없으면, 낡은 검은 모자의 윗부분을 흰 종이로 덮어서 쓴다. 예전에는 왕족이 죽으면 모든 한국인은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상복은 비쌌다. 새 옷을 사지 않기 위해 남자들은 매일 흰색 옷을 입었다. 모자만 바꿔 써도 상갓집에 갈 수 있었고, 일부 애도 모자는 매우 무거운 짚으로 만든 것도 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모자를 잘 관리한다. 비가 올 때는 모자 위에 딱 맞는 작은 우산 모양을 한 모자를 쓴다.

지식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외국인 복장, 특히 모자와 신발을 신었다. 로스 부인은 신발만 보면 그들의 국적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인들은 그들만이 신는 신발이 있고, 일본인들은 나막신과 샌들을 신는다. 한국인은 짚으로 만든 신발을 신는다.

 

원초적인 형태의 집

한국의 많은 집은 지붕은 초가지붕이고, 실내 장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 주방에는 아주 적은 양의 그릇들로 갖춰져 있고, 나무 사발과 나무 숟가락, 젓가락, 나무 테이블 장비가 있다. 한국인들은 모두 바닥에 앉는다. 로스 부인은 오직 한 집에서만 의자를 봤다고 말했다. 그 집은 매우 부잣집이었는데, 낮은 화장대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또한, 이 집에는 여성들이 서서 “자신을 볼 수 있는” 것을 걸어 놓은 거울도 있었다. 로스 부인이 그녀를 방문한 날 그녀는 서둘러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는 주로 서울 여성들이 썼으며 서울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그리 광범위하게 착용하진 않는다.

모자는 여름용과 겨울용이 있으며, 위가 뚫린 형태로 춤이 높은 터번처럼 생겼다. 주로 실크나 그 외 사용 가능한 재료로 만들어졌고 띠 형태의 구슬로 장식을 했다. 금이나 옥으로 만든 장식도 있는데, 이런 장식들은 매우 공들여서 작업한 것들이다. 어떤 것은 정중앙에 하나의 큰 장식을 달기도 했다. 겨울 모자에는 따뜻함을 더해주는 덮개가 달려있는데, 이 덮개는 모피 털로 만들기도 했다.

 

신발은 벗어야

한국 여성을(한국 집을) 방문할 때면, 신발을 벗어야 한다. 왜냐하면, 집 바닥이 기름칠 된 종이로 만들어져 있고 한국인들은 바닥에 앉기 때문에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발을 신은 채 바닥을 밟았다면 이는 당신을 방문한 손님이 당신이 가장 아끼는 응접실 의자 위를 걸은 것과 같은 것이다!

한국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식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친절하다. 만약 당신이 그들을 방문한다면 말린 생선과 신기하게도 작은 케이크, 으깬 과일과 설탕으로 만든 음료를 대접받을 것이다. 이 다과는 어린이 놀이방에 있는 테이블만큼 낮지만, 아름답게 장식된 테이블에 차려진다.

 

장 서는 날

닷새에 한 번씩 오일장이 선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쌀과 수수를 가지고 오고, 가방 안에는 돼지 새끼와 닭 (이 모든 것을 등에 짊어지고 온다), 물건이 가득한 바구니와 촘촘하게 짠 짚신을 가지고 온다.

한국에서 황금 꿩은 흔한 음식으로, 한 마리당 약 45센트다. 로스 부인은 자신이 어떻게 이 아름다운 꿩 깃털을 구했는지 즐겁게 말했다. 날개와 가슴 부위는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조심스럽게 포장해 준다. 해관 세관원이 “안 된다”고 말할 때까진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비록 한국에서 꿩 깃털이 닭 깃털과 다를 바 없지만, 그것을 (미국에) 가지고 올 수는 없다. 꿩 깃털은 파라다이스 깃털과 함께 반입금지 품목에 포함돼 있다. 작은 분재 소나무도 마찬가지다. 로스 부인은 이 분재 소나무가 약 10년 정도 된 것으로 동양의 분재 소나무의 훌륭한 종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작은 나무들도 모든 종류의 ‘해충’에 걸릴 수 있다. 산호세에 가져온 것은 한국을 떠난 작은 분재 나무가 담긴 작은 바구니가 전부다.

 

자유를 위해 죽다

로스 여사는 “서울에는 독립문이 있습니다”고 말하며, “이는 한국이 중국(청나라)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을 때 세워졌는데, 이 문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합병했을 때 그들이 그린 것입니다. 애국적인 한국인들이 독립문 위에 그들의 상징을 다시 그렸는데, 그로 인해 그들은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또, 한국에는 ‘자유의 종’도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종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쳤지만, 자유를 위해 이 종은 여러 번 울렸습니다. 한국은 고통을 겪고 있고, 한국 국민은 독립을 얻기 위해 기꺼이 고통받고 죽을 것입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