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6, 1919 | The Los Angeles Times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야만 행위에 대해 증언
“미국의 선교사들은 한국의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않아”

 

4월 4일, 서울(한국) (4월 25일, 샌프란시스코) – (AP통신) 한국인을 대상으로 일본 경찰, 헌병, 그리고 때때로 군인들에 의해 행해진 불필요한 잔인성은 한국의 독립운동과 관련돼 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일본 경찰들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울부짖는 것 외에 한 것이 없는 무장하지 않은 한국인들을 향해 검과 소총을 들이대고 경찰서로 끌고 갔다고 한다.

그 중에는 한국 여성들도 많이 체포됐다. 석방 후 그들 중 많은 사람은 감옥에 있는 동안 구타와 발길질을 당했다. 그들은 특히 남자들 앞에서 옷을 벗기우고, 조롱당하고 비웃음 당했다.

어떤 경우에는 손가락을 서로 묶고 심하게 홱 잡아당겨 팔을 강제로 뻗게 해 무거운 의자를 들고 있게 한 후 떨어뜨리면 막대기로 때렸다. 많은 종류의 학대가 가해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 당국은 기관지 서울프레스를 통해 시위대에 온건하게 대처했고, 한국인들이 평화를 위협하는 폭력을 행사할 때만 가혹하게 조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고문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서울프레스는 전도사 에들린 M. 로버츠 여사가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편지를 게재했다.

 

목격자

“저는, 여성으로서 비록 방 안에 있었지만, 일곱 명의 사람이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서, 한 무리의 여성들을 향해 총격이 가해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녀들을 손에 막대기나 돌도 들지 않았고, 손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단순히 만세를 외쳤을 뿐인데도 말이죠.”

“저는 여섯 명이 두들겨 맞고 발로 걷어 치였고, 그중 2명은 손이 묶인 뒤 잔혹하게 두들겨 맞는 것을 봤습니다. 또 한 번에 백 명의 죄수들이, 그리고 그 뒤에 20명이 들어오는 것을 봤는데, 이들 중에는 나이 어린 10대 초반의 아이들도 있었고, 허리가 굽고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도 있었습니다. 소달구지에 2명이 엎어져서 실려 오기도 했는데, 그들은 살아 있다기보다 죽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 병사가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개에게 하듯 돌을 던지는 것도 보았고, 총검으로 남자, 여자, 아이들에게 돌진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일본 당국은 한국인들이 시위를 시작했으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계속했다고 주장했다.

(고구려의) 옛 수도이자 강력한 저항 봉기의 중심지 평양에서는 소방대원들이 소화용 고리를 사용해 시위대를 진압하는 것을 보았다고 목격자들은 진술했다. 한편, 일본 당국은 시위대가 경찰서에 돌을 던지고 도끼와 칼로 무장한 경우가 많아서 헌병대와 군인들은 정당한 방어를 위해 총을 사용한 것이고, 반란으로 변해가는 시위를 진압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총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총 대신 주먹

또, 일본 당국은 군인들이 불필요하게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피하기 위해 많이 절제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수백 명의 한국인 무리가 15명의 일본 무장 병력이 지키는 평양 근처의 좁은 다리를 가로질러 돌진해 왔다. 일본인 말에 따르면, 그 때 군인들은 총을 내려놓고 맨주먹으로 일본 호신술인 유도나 주짓수를 사용해 다리를 방어했다고 주장했다. 일본 군인들의 주먹질로 많은 한국인들이 아래쪽 해변으로 달아났고, 거기서부터 무사히 기어나갔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많은 곳에서 일본 군대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발포했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사망했거나 부상을 입었다. 약 50명에 달하는 부상자가 세브란스병원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이곳은 몇 년 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있는 L. H. 세브란스가 설립한 선교기관이다. 그들 중 일부는 목, 허벅지, 복부에 심하게 총상을 입었지만, 헌병대가 도시로 오는 것을 방해할 것을 우려해 멀리 우회해 왔다고 말했다. 그들 중 몇몇은 매우 끔찍한 상태로 도착했다. 상처 입은 곳은 더러운 천이나 가금류의 창자로 묶어(미신적 효과로 추정) 지혈했고, 그 결과 상처가 곪아있었다. 선교사 의사들은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했다.

이러한 인도주의적인 측면을 제외하면, 미국 선교사들은 한국의 독립운동에 참여하진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일본 당국의 세심한 감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