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3, 1919 | Grand Forks Herald

현지 한국 기독교인들을 교회 안에 감금하고 총격, 수감자들에 대한 폭행과 고문,
그리고 여성에 대한 모욕적 행위에 대한 보고

 

7월 12일, 뉴욕 – 한국에서 벌어진 일본에 의한 잔혹 행위에 관한 보고서가 오늘 미국 장로교회 본부에서 공개됐다. 이 보고서는 일본 당국에 의해 몇몇 선교사가 투옥됨에 따라 미국 장로교회의 한국 대표자들이 실시한 조사 결과다. 한국으로부터 받은 정보는 일본의 검열을 피해 전달됐다.

수천 단어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장로교회가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미국 신문들은 이미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본의 만행에 관한 보도로 넘쳐난다. 또 다른 벨기에가 전 세계인의 손에 달린 것처럼, 누군가에 의해 진실이 전해지고, 이것들이 후에 건설적인 개혁을 위한 기초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이 기사는 이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다.”

 

다른 보고들

“여기서 보도된 것은 한국의 여러 곳에서 중복될 수 있으며, 일부 보도는 멀리서 받았기에 우리가 보도한 내용보다 훨씬 더 시야가 좁다. 법적 자격이 있는 증인들의 증언에 기초해 작성한 것이 아닌 것은 생략했으나, 의심할 여지없이 사실인 것으로 알려진 사건에 국한해서 보도한다는 지침을 세웠다.”

“많은 보도 내용이 극도로 역겨워서 이런 일을 목격한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독자들도 분노로 피가 끓어오를 것이다. 우리는 보도 내용 자체의 교훈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도한다.”

 

교회에서 살해되다

기독교인이라 고백했던 수백 명의 한국인들이 일본 헌병대의 총검에 의해 교회에 감금됐고, 공포에 질려 모여 있던 그들을 향해 일본 헌병들은 창문을 통해 총격을 가하고, 예배당에 불을 질러 교회는 화마 속에서 사라졌다. 희생자 대부분은 남자였고, 살아남은 여자들과 아이들은 궁핍한 상태로 남겨졌다.

 

서울에 살고 있는 선교사인 H. H. 언더우드씨가 1919년 4월 29일 장이 서는 팔탄(Pal Tan)마을을 방문한 내용과 관련된 기사가 일본 도쿄 재팬 애드버타이저(The Japan Advertiser)지를 통해 인용 보도됐다. 그에 따르면, 2주 전 일본군이 팔탄마을에서 2마일 떨어진 제암리 마을에 있는 40여 채의 가옥 중 36채를 불태웠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주민들이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곳에 기독교인이 없었기 때문에” 불과 칼을 모두 피했다고 말했다.

 

맞아 죽다

혁명운동(독립운동)에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한국인들에 대한 일본 경찰의 예비조사에 따르면, 남성들은 구타 당해 사망하고 여성들은 거의 모든 가능한 수치스러운 대우를 받는 “인간 잔혹함의 끝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 좀 가벼운 처벌이 수감자를 대나무 몽둥이로 90대를 때리고 발로 걷어차는 것이었다. 1919년 4월 22일자 주한 미국인이 서명한 성명서에는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된 여성에 대한 형벌이 가장 수치스럽고 굴욕적이었다”고 밝혔다.

 

여성에 대한 능멸

그는 “한국과 중국 여성은 유럽 여성들과 같은 섬세한 감성을 지녔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이 상황을 이용해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 하는 여성 수감자들의 고통을 증가시켰다고 비난하며, 교양 있고 세련된 한국 여성들이 그들에 의해 가장 심한 모욕을 당했다고 말했다. 한국인 여성들은 대중 앞에서 굴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기사는 계속해서 한국에서 존경받고 있는 여성들은 낮에는 집도 안전하지 못해 대부분의 시간을 산 속에서 피난민처럼 지내다 밤에만 집으로 돌아갔다고 보도했다. 일본 경찰은 한국의 독립에 찬성하는 모든 여성들을 사회적 이단자로 지정한다. 한 기독교인 여성이 일본 경찰에 의해 소켓으로 팔이 뒤틀려 버린 사건도 있었다.

 

미국인을 비난하는 일본인들

1919년 3월 17일자 조선 내 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한국인들을 선동하는 것은 미국 선교사들의 소행이다. 이번 봉기는 그들이 한 일이다. 선교사 중에는 천박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한국인의 마음을 나쁘게 만들고 민주주의의 씨앗을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