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9일 | 시보

(3월 29일 통신) 개성에서 26일부터 상가 철시에 들어가 27일 전 시내 상점이 휴업하였다. 모두 독립만세를 외쳤고 독립운동이 크게 번질 조짐을 보인다. 파주에서 27일 장날 7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본 군경이 시위 군중에게 발포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수원에서 같은 날 300여 명이 모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군경에 의해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으나 시위대는 해산하지 않았다. 그밖에 시흥, 장단, 강화도, 옥천, 양산, 청주, 연기, 진주 등지에서 독립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다.

3월 29일 오후 3시 수원에서 1,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시위운동을 펼쳤다. 30일 오전 10시경 수원 기생조합원 100여 명이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 수원 자혜병원으로 가던 중 경찰서 앞에서 만세시위를 했다. 병원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독립만세를 불러 일본 군경에 의해 쫓겨났다. 이 때 극심하게 구타를 당해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기생 조합장은 검거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대전 시장에서 29일 모든 상인들이 휴업하고 독립만세를 불렀고 29일 오후 1시경 구포에서 1,000여 명이 모여 대규모 독립운동을 펼쳤다. 의주와 진남포의 모든 시장이 휴업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