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3일 | 신보

(로이터통신) 3월 3일 오후 5시 약 2,000여 명의 대오 중 14살, 18살의 청소년들이 앞장서서 가두행진을 하면서 고려[조선] 독립을 외쳤다. 행진 중에 일본 국기가 보이면 즉시 일본 국기를 내려 버렸다. 3월 1일 호수돈여고생 2백여 명이 대오를 지어 성가와 마르세이유 노래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했다. 일본 군경은 총칼로 해산시키고 주동자를 체포하려 할 때 학생들은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우리의 진정한 뜻을 전달하는 것뿐이라고 역설했다. 그러자 이에 감동한 군중 2,000여 명이 학생들과 합세해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지속했다.

평양에는 3월 1일 오후 1시 기독교인 1,500여 명이 교회당에 모여 기도한 뒤 거리로 몰려나갔다. 그곳에는 이미 공사립 학교의 학생 천여 명이 모여 있었다. 한 명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이어서 모두가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일본 군경이 총칼로 진압하여 30여 명이 부상당했고 그 중에는 살아날 가망이 없는 자도 있다.

미국인 선교사 모펫이 이 운동을 부추겼다는 혐의를 받고 그 다음날 밤 경찰서에 출두하여 심문을 받았다. 3월 3일 다시 시위행진이 계속되었는데 동원된 군중은 전보다 더 많았고 기세도 더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