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3일 | 오사카아사히(大阪朝日新聞)

대거 경찰서를 습격하여 수비군대와 충돌
서울에서는 남녀 학생의 시위운동

 

장례식을 앞두고 서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상황에서 3월 1일 오후 3시경 평안북도 선천과 의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3월 1일 아침 서울의 남대문 앞에서도 배일 격문을 붙이는 조선인이 있었고 조선의 주요 인물들에게 격문을 배포하였다.

3월 2일 서울에 모인 수만 명의 군중들이 덕수궁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시내를 돌아다니며 시위운동을 벌였다. 그 운동에 참가한 자는 대부분 남녀의 학생들이다.

3월 1일 진남포에서 기독교인 780명이 불온한 문자를 쓴 깃발과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를 외치고 시내를 돌아다니다 일본 경찰에 의해 진압 당했다. 이 사건은 조선 각지의 기독교인들과 연락하는 것 같으며 불온한 선언서를 살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