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5일 | 신문보

토요일(3월 1일) 오후 서울에서 한인 수천 명이 행동에 나서 거리를 행진하였다. 폐위된 전 한국의 황제의 시신이 안치된 궁전에 밀고 들어간 이가 수백 명이 된다. 이들은 한국의 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시위운동에는 여학생들도 참여하여 시위대를 따라 거리를 돌며 선언서를 배포하였다. 일본 헌병경찰은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사력을 다하고 있다. 검거된 자가 100여 명에 달한다. 일본 신문들은 지금 일어난 곳곳의 소란은 모두 교회와 학교의 학생들이 주동한 것이라고 보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