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8, 1919 | The Pacific Commercial Advertiser

일본군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고문

 

①일본이 씌운 멍에를 벗기다 전 세계가 지지할 것을 요청

3월 14일, 도쿄 (재팬 어드버타이저 기고) – 이 독립선언서는 한국의 위원회가 서울에서 발행한 유일한 복사본일 것이며 독립선언서의 발행은 일본 내무부에 의해 금지되고 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은 장로교, 감리교, 로마 가톨릭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의 지도자들이다. 이렇게 여러 종교의 이름을 나열하는 이유는 한국의 독립운동이 특정 교회나 종교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모든 종교가 참여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독립선언서 서명자들은 선언문 인쇄본 전단이 서울 거리에서 배포되기 한 시간 전에 체포됐다. 수천 부의 선언서가 배포됐고, 한국인들은 심지어 선언서를 일본 경찰과 헌병들에게도 뿌렸다.

이 독립선언은 나흘 후 또 다른 발표로 이어졌다. 발표의 요점은 한국인들은 재물에 대한 파괴나 생명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야 하며, 다른 이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한국인은 국가를 욕되게 하고 독립운동의 명분을 훼손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선언서를 계획

독립선언문은 시리즈로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나는 지식인들, 또 하나는 재계와 전문 지도자, 그리고 농민 대표자들이 서명을 해서 독립운동이 한국의 모든 계층을 보편적으로 대표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이다.

3월 12일까지 운동은 비교적 평화적이었으며, 일본 언론은 경찰과 헌병대 초소에 공격이 가해졌다는 소식은 신빙성이 없는 것이라 보도했다. 심지어 독립 만세운동 초기 서울에 있었던 일본 공보국장까지도 같은 의견을 밝혔다. 일본 공보국장은 병원이 소총에 맞아 쓰러지거나 검에 자상을 당한 한국인들로 가득 차 있지만, 일본인들의 재산 파손이나 인명 피해 사례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한국 여학생들은 밀려드는 인파에 넘어져 밟히거나 경찰의 몽둥이에 맞아 짓밟히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한국의 독립선언서를 가져오는 것은 일본에 의해 금지돼 있고 일본에서 가지고 있는 것도 불법이었다.

 

②한국에서의 계엄령 선포; 수천 명이 수감 되거나 사망

한국 남성과 여성, 아이들이 일본군에 연행
이승만 박사가 하와이에서 멕시코, 미국에서 온 한인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다.

필라델피아, 3월 27일 (AP통신) – 대한인국민회 대표로 호놀룰루에 있는 이승만 박사가 금일 상하이 한국 대표부 서명으로 보내온 전보에 따르면, 일본 당국은 한국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11,000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감옥에 투옥됐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고문당했으며, 1,000명 이상의 남성, 여성, 아이들이 독립운동에 지지를 표시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연행됐다.

한국 전역에서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이 전보는 전했다. 일본군은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승만 박사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독립운동에 동참하고 있으며 한국의 독립을 허가해 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4월 14일, 하와이와 멕시코, 미국에서 온 한국 대표 회의를 소집했고 회의 시간은 곧 알려질 것이다.

 

③극동의 평화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본

도쿄, 3월 14일 (재팬 애드버타이즈) – 독립선언서를 소유하는 것이 경찰에 의해 금지돼 있어 이미 7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도쿄 감옥에 수감돼 있고,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이 계속 수감될 것이다. 학생들은 성명서를 작성해 배포한 혐의로 출판법 위반에 따라 6~10개월간 수감되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성명서는 국회의원들과 일본 주재 외국 대사와 장관들에게 우편으로 사본을 발송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것을 일본에서 출판하면 신문사 취재기자들에게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수단일 것이다.

 

성명서의 선언문은 다음과 같다:

2천만 동포들을 대표하는 ‘조선청년민족독립연맹’은 정의와 자유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누리는 모든 국가들에게 자결원칙을 적용함으로써 한국의 자주독립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모든 나라들에게 선언한다.

한국은 40세기 이상 지속된 역사를 가진, 잘 조직화된 국가와 높은 수준의 문명을 확립하고 유지해온 고대 국가 중 하나이다. 비록 어떤 때는 한국이 중국 황제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일부에서 주권적 권력에 영향을 주지 않은 두 나라간의 명목상의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자치의 힘에 관한 한, 한국은 항상 한국만의 한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한국은 근본적으로 외국으로부터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 이것이 한국 독립의 첫 번째 이유다. 즉 역사적 권리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 통제권을 얻다

중일전쟁의 결과인 중일강화조약(1895년 체결)에서, 일본은 한국의 절대적 독립을 인정하고 보장한 최초의 강대국이었다. 이는 서구 열강들이 인정하고 보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후 한국은 이웃 나라들의 우호적 요청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직개편과 완성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1903년, 일본은 동양의 평화 유지라는 두 가지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한국과 공수 동맹을 맺을 것을 한국에 요청했다.

 

④캘리포니아 신문 발행인 맥클래치, 립운동 하던 한국인이 구타당하는 것을 목격

어제 호놀룰루에서 새크라멘토 비 발행인 맥클래치 씨는 독립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끌려가는 한국 여학생들을 서울 거리에서 봤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이 시작되자 일본 경찰과 헌병들은 총과 몽둥이를 마음대로 사용했다고 그는 말했다.

맥클래치 씨는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잘 아는, 호눌룰루에 온 첫 번째 사람이다. 어제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까지 발표되지 않았던 사실들에 대해 이야기 해줬다.

한국에서 시위가 시작된 3월 1일을 며칠 앞두고 도쿄에는 한국의 독립선언문에 관해 언급한 문서가 등장했다. 그 주동자들은 바로 체포돼 유죄판결을 받고 무거운 처벌을 받고 있다.

서울에서는 한국의 전 황제의 장례식이 3월 3일 월요일로 계획돼 있었다. 이에 앞선 (3월 1일) 토요일 2시 서울 파고다공원에 33명이 서명한 독립선언문이 낭독됐다. 선언문을 통해 (민족대표는) 대중들에게 평화적 시위를 요구했으며 특히 한국인들이 무력을 사용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첫 번째 서명은 천도교 교조가 했고, 그 다음 감리교인, 성공회교인, 장로교인, 가톨릭교인, 불교 교인들의 이름이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