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7일 | 중화신보

지난 3월 29일 등주에서 한인들이 시위운동을 전개하는 중 희생자 11명, 부상자 200여 명이 발생했다. 그리고 4,000여 명이 일본군과 소방대원들에게 체포돼 역 앞에서 생매장 당했다. 희생자 가족들이 시체를 옮기려 하다가 구타를 당했다. 심씨 성을 가진 의사가 부상자를 치료하다 일본인들의 채찍에 맞고 체포됐다. 천도교당이 일본인에 의해 소각됐다. 현재 한국은 외국 적십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3월 27일, 28일 시위운동이 계속됐다. 학생들은 인쇄물을 배포하며 인심을 고무시켰다. 일본 군경은 이러한 인쇄물을 보고 한인들을 사정없이 구타했고 일반 가옥을 무단 수색했다. 체포돼 감옥에 갇힌 사람이 600명에 달한다. 경찰서에 갇힌 사람이 123명에 달한다. 경찰서는 감옥에 비해 훨씬 혹독하게 한인들을 구타하고 있다. 29일 서울 여러 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일본인을 위해 일했다 해 한인들의 미움을 산 곳들이 불에 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