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사


임시정부의 서울(중앙)연락본부

진관사에서 발굴된 독립운동 자료는 임시정부 연통제의 불교계 “서울(중앙)연락본부”가 바로 “진관사津寬寺”였음을 밝혀주고 있다.

첫째, 벽을 파고 독립운동 자료를 넣어 다시 벽을 쌓아 바른 완벽한 은닉 공사는 완전한 근거지에서나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인데, 그러한 작업을 한 벽 속에서 연통제 때의 독립운동 문건들과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 자료들은 진관사가 불교계 독립운동의 “서울(중앙)연락본부”였다는 명백한 증거뭏이다. 금이 쏟아져 채광되면 그 곳이 금광맥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진관사가 마포에 포교당布敎堂(극락암)을 갖고 있어서, 중국 및 국내 각처와 연락 거점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서울로 들어오는 큰 입구는 인천이지만, 작고 빈번한 입구는 당시 “마포”였다. 각종 선박들이 마포에 항상 출입하므로 일제 경찰의 감시를 분산시키며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마포였다.

셋째는 마포의 진관사 포교당을 수시로 사용하여 독립운동을 하면서, 상해 임시정부에서 온 독립운동 문건을 진관사의 벽을 파서 은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불교신자 독립운동가나 승려가 있었는가를 찾으면 된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독립운동가 승려가 있었다. 초월初月 백인영白寅榮 대선사가 바로 그 분이다. 그는 3·1운동 직후 진관사의 마포 포교당에 거주하면서 불교 강론을 폈고, 진관사의 주지 스님보다도 상위의 위치를 갖고 진관사에 출입하던 대선사이다. 그는 뒤에 일제에 검거되었을 때에도 주거지를 경상도 사찰로 유도하고 마포 포교당은 끝까지 감추었다.

넷째는 동일한 독립운동자료(예.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신문』 제30호와 제32호가 각각 2벌씩 있음)가 복수로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문건을 나누어주는 “연락본부”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백초월 대선사는 3.1운동이 일어나자 국내에서 한용운·백용성 스님을 계승하여 주로 다음과 같은 독립운동을 하였다.

  1. 1919년 4월: 불교중앙학림 안에 한국민단본부韓國民團本部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불교 독립운동을 게속했으며,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하였다.
  2. 1919년 7월: 임시정부 연통제의 불교계 서울(중앙)본부의 총감독(책임자)이 되어,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비밀출판물로 간행해서 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
  3. 1919년 8월: 연통제 활동의 결과 전남 천은사泉隱寺 주지 하용하河龍河 스님으로부터 200원을 모금해서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4. 1919년 10월: 독립운동자금 300원을 모금했으며, 독립운동에 활동한 청년 11명을 만주 길림성 독립군에 보내고, 청년 6명을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과 함께 보내었다.
  5. 1919년 11월: 개천절을 기하여 11월 25일 독립만세 시위운동 계획을 세우고, 종로 삼청동에 “태극기”와 “단군기념”이라는 깃발을 내걸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성립”에 관한 “축하문”과 “선언서” 및 “포고문” 등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6. 1919년 12월: 임시정부에 보낼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가 일제 경찰에 피체되었다. 일제의 가혹한 고문으로 수감 중 병을 얻었다.
  7. 1920년 2월: 3·1운동 1주년을 맞이하여 동경유학생들의 독립운동을 일으키는데 지원하려고 이달李達과 함께 동경에 가서 활동 중 2월 25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8. 1920년 4월: 상해 임시정부에서 파견된 신상완申尙玩 스님과 함께 비밀결사로 “승려의용군僧侶義勇軍”을 조직하고,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이다가 1920년 4월 6일 일제 종로 경찰서에 체포되었다.
  9. 1938년: 봉천행 화물열차에 “대한독립만세”라고 낙서한 사건에 연좌되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대전형무소·청주형무소 등으로 이감 전전하다가, 1944년 6월 66세를 일기로 청주형무소에서 옥사, 순국하였다.

백초월 대선사


일제에 항거한 진관사의 스님


태극기


일장기 위에 그려진 태극기

진관사 칠성전 해체 불사를 진행하던 중 불단과 기둥 사이에서 발견된 태극기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색이 변하고 왼쪽 윗부분이 불에 타 약간 손상되었지만, 형태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89cm, 세로 70cm, 지름 32cm이다. 이 태극기의 4괘는 현재의 국기와 비교하면 리·감의 위치가 바뀐 형태이며,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제정한 국기 양식과 동일하다. 태극은 청·적색이고, 현재의 국기를 뒤집어 놓은 모습이다.


『신대한新大韓』 제1·2·3호는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가 주간이 되어 상해에서 창간한 독립운동 신문이다. 종래 제1호, 제17호, 제18호는 발견되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에서 새로 편찬한 『단재신채호전집』(2008) 제5권에 수록되어 있으나, 『신대한新大韓』 제2호와 제3호는 이번 진관사에서 처음 발굴되어 세상이 알게 된 것이다.

『신대한新大韓』은 단재가 통합임시정부 대통령에 위임통치 제안자 이승만 박사를 선출한 것에 반대하여 임시정부에 비판적 신문으로 창간한 신문인데, 이번 『신대한新大韓』 3점의 발굴은 국내 불교계 독립운동이 신채호와도 연락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신대한新大韓』의 무기명 사설과 논설은 모두 단재 신채호가 직접 집필한 것인데, 이번에 단재의 새 작품도 몇 점 새로 발굴된 셈이다.

신대한


상해에서 창간한 독립운동신문


독립신문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獨立新聞』 1919년 11월 27일자(제30호) 2점과 1919년 12월 25일자(제32호) 2점은 신문 그 자체는 알려져 있으나, 이번 진관사에서 발견된 제30호와 제32호는 주목해야 할 큰 의미가 있다.

제30호에는 『태극기太極旗』라는 시詩와 『개천경절開天慶節』의 감언感言이라는 논설이 게재되어 있다. 이것은 백초월白初月 대선사가 1919년 11월 개천절을 기하여 독립만세 시위운동 계획을 세우고, 종로 삼청동에 “태극기”와 “단군기념”이라는 깃발을 내 걸고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성립에 관한 “축하문”, “선언서”, “포고문” 등을 인쇄하여 배포한 독립운동 실행과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발굴된 다른 자료는 각 1점씩인데, 이들 『독립신문』만은 2점씩인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여러 부수를 보내어 배포와 운동을 촉구한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고 해석된다.


국내의 『조선독립신문朝鮮獨立新聞』은 3·1운동의 천도교 측 기획단에 의해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과 동시에 발행된 지하신문으로 3·1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홍보역할을 하였다. 천도교 계열의 보성전문학교 교장 윤익선(尹翊善)이 천도교 측 민족대표의 하나인 이종일李鍾一과 협의하여 처음에는 보성사에서 인쇄하여 간행하였다. 제1호는 3월 1일에 약 1만 장을 인쇄하여 발행하였다. 윤익선이 체포당하자, 이종린李鍾麟 등이 제2호부터 제4호까지 발행하였다. 그 후의 호수는 자발적으로 여러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등사판으로 인쇄하여 발행되었다.

조선독립신문


천도교 기획단 발행의 지하신문


자유신종보


진관사 최초 발굴된 등사판 신문

『자유신종보自由晨鍾報』 제4·7·12호는 이번 진관사에서 처음 발굴되어 세상에 처음 알려진 매우 중요한 독립운동 관계 등사판 신문이다. 처음 발굴된 자료이기 때문에 앞으로 연구가 있어야 정확한 발행자와 발행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발굴된 『자유신종보』의 제4호의 사설 내용이 「자치파自治波 정상頂上에 일침一針을 하下함」이란 제목으로 소위 ‘자치운동자自治運動者’를 이완용·송병준·조중응 등에 비유하면서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사실에서, 그리고 이 논설의 서명자가 이기찬李基燦, 박승빈朴勝彬 등 국내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지하신문임을 알 수 있다. 제7호(1919년 7월 19일 자, 금요일)는 신문 끝에 ‘사고社告’가 게재되어 있는데, 「그동안 얼마나 궁금하셨습니까? 본보 애독제씨여, 모 사건이 발생함을 인하여 본사는 주의主意를 가加케 되므로 내부에 확장과 외부의 활동을 민활케 하고자 임시 휴간休刊하였다가 제반 준비가 구전具全하여 재료의 정제精製와 사원의 진력으로 독자제씨를 대하고자 하오니 배전 애호하심을 무망務望』이라는 기사가 있다.


『警告文』 (우리 형제들에게)는 1919년 6월 “조선노동회경성단朝鮮勞動警醒團”이라는 단체에서 발행 배포한 전단(삐라) 성격의 문건이다. 내용은 대한독립은 세계 대세임을 설명하고, 매국노 이완용李完用의 제3회 고문古文을 격렬히 규탄함과 동시에 일부 귀족 사이에서 대두되는 자치운동自治運動에 동포 형제들이 현혹되지 말고, 임시정부도 활동하고 있으며, 조선의 독립은 우리의 일이니 완전독립에 확신을 갖고 독립투쟁을 끝까지 실행하자고 호소한 글이다.

경고문


조선노동회경성단에서 배포한 전단